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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묵패(華陽墨牌) - 김 중 위
김만조
2012. 5. 27. 20:00
◈화양묵패(華陽墨牌) - 김 중 위
박원순 서울시장이 얼마 전 내년부터 3년동안매년 1000억원의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여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하였다.그리고 그 기금(基金)의 절반은 민간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이 발표를 보면서 참으로 희한한 발상도다 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기금을조성하거나 예산을 편성하는데 민간기업으로부터의 기부를 전제로 하는 경우도 있나싶어서다.중앙정부이건 지방정부이건 예산은 법으로정한 대로의 국민세금과 기타 수입금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다.세금이외의 기부금으로 예산을 충당하겠다는발상은 지금까지 어떤 정부 어떤 정권에서도있어 본 적이없다.그것은 법을 뛰어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아마도 법을 무서워하지 않던 평소의 재야활동무대에서 익힌 수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없지 않다.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기부금을 거둬들이기로한다면 누구인들 못 거두어들일 것인가?그러나 그것은 기부의 미명(美名)하에저질러지는 민폐(民弊)요 착취일 수밖에 없을것이다.조선조 말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거두어 들인원납전(願納錢)과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사례가 아니겠는가?조선조에 있었던 화양묵패(華陽墨牌) 또한마찬가지다.노론의 영수 우암(尤庵 宋時烈)을 제향하기위해 세운 당시의 화양동 서원은 오늘날의참여연대 만큼이나 세력이 막강했던 모양이다.어떤 거절할 수 없는 대의명분을 앞세워일정한 금액을 정하여 지정한 날짜에 기부하도록 검은 도장을 찍은 고지서를 발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화양묵패(墨牌)였다.이 묵패를 받은사람은 전답을 팔아서라도지정한 날짜에 지정한 대로의 기부금을마련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서원 마당에 붙들려나와 어떤 곤욕을 치를는지 모를 정도였다고하니 말이다.그만큼 서원의세력은 관아(官衙)도 어쩌지못할정도로컸다.이에대해 매천야록(梅泉野錄)은 이렇게말하고있다(허경진 역)."서원을 책임지는 자들은 묵패를이용, 평민을잡아다가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빼내니,남방의 좀이라 불렀다."껍질을 벗긴다든지 골수를 뺀다는 말은 문자그대로의 뜻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했다는 뜻이 아니겠나 싶다.매천은 시대정신이 투철한 선비였으니 표현또한 남달랐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여하튼 대원군에 의해 서원이 철폐되는계기를 제공한 것도 결국은 이 묵패의 폐단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않은가?이 묵패는 조선조에서만 있었던 것은아닌것같다.해방 이후 반탁이냐 찬탁이냐로 나라 안정국이 극도로 어지러운 때에 의혈남아(義血男兒)로 유명한 김두한(金斗漢)이 우남이승만의 부름을 받고 이화장엘 갔다.이승만은 친절하게도 반탁투쟁에 앞장서 있는그의 용기 와 애국심을 치하하고 나서 얇은사각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잘 싸워 달라고하는 것이었다.김두한은 이화장을 나선후에 이봉투를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먹 글씨로 쓴'만(晩)'이라는 사인만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뿐아무 내용도 없었다.이승만으로부터 거금의 활동자금이라도받아들줄 알았던 김두한은 실망한 채로'만'자 사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그러다가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이승만이 허락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하고장안의 거부들로 부터 자금을 얻어 쓰면되겠다 싶었다.태창방직 사장 백낙승, 현금 갑부인 민대식,화신 백화점의 박흥식 등을 찾아가 만자사인을 들이밀고 돈을 요구하였다.'묵패'로 활용한 것이다.강제로 돈을 빼앗긴 이들은 며칠후 억울하고분한 마음에 함께 모여 수도(首都) 치안책임자인 창랑(滄浪) 장택상을 찾아가서항의 겸 하소연을 하였다.이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창랑은 김두한을수도청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갑부들과김두한은 창랑 앞에 마주하고 앉았다.김두한은 말없이 품속에 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이때 백낙승이 벌떡일어나 창랑에게 말하는것이었다."이 봐요! 창랑! 그 돈은 우리가 기부한것으로 해 주시오."그러자 다른 부호들도 일어서면서 똑같이소리쳤다."맞습니다. 그건 우리가 반탁활동에 쓰라고기부한 겁니다."실록 소설(이룡)에 나오는 얘기다.이 얘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않다. 묵패의 무서움을 이해하는 데에는전혀 지장이 없을 듯하니 말이다.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행하는 기부금 모집안내 공문은 왜 묵패가 아니겠는가?다른 모든 지자체(地自體)가 이를 모방할까두렵다.(농암 김중위/시인.)수필가. 前 사상계편집장. 4선의원.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