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리더십
업그레이드 된 리더십을 원하면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발자국만 좇아가면 될 일이다.
목사들에게 지도자의 모델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다.
목사를 양치는 목자로 비유할 경우 양을 치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하나는 앞에 서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지도자 형이다.
지팡이를 가지고 무리의 앞장에 서서 앞의 풍성한 초원을 향해서 수많은 양떼를 이끌고 간다.
“나를 따르라” 하며 지팡이를 들어 갈 길을 지시하고 그 방향을 알려준다.
어디에 가면 풀이 있고 어디에 가면 늑대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목자이기에 양들은 안심하고
지팡이가 가르치는 쪽을 향해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양을 이끄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전능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많은 경우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는 독재자가 아니면 독선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지도자가 앞장서서 가다가는 낭떠러지에 전부 떨어쳐 죽이거나 길을 잘못 들어 눈밖에 없는
설산에서 굶어죽게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또 하나는 양떼 뒤에서 모는 지도자가 있다. 문자 그대로 양떼를 뒤에서 몰아가는 백업형이다.
“너희들 마음대로 풀이 있는 곳을 찾아가 뜯어 먹어라” 고 하면 양떼는 무리를 지어 풀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풀이 어디에 있는지, 냇물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런 목자는 양을 뒤에서 몰아가다가 가끔 무리에서 벗어난 양들을 무리를 찾아가도록 지팡이로
경고하고 유도한다. 이따금 늑대가 오면 지팡이로 내좇아 양의 무리를 보호하기도 한다.
앞장서서 양을 이끄는 목자의 지팡이는 방향을 알려주는 방향타요 비전의 빛이지만 뒤에서 몰아가는
목자의 지팡이는 양을 관리하고 늑대를 쫓는 보호의 무기가 된다. 뒤에서 양떼를 모는 목자는 앞에서
이끄는 목자보다 훨씬 민주적인 지도자(?)이다.
좀 비근한 예로 중고등학교 시험시간에 앞에서 지켜보는 시험 감독선생은 감독을 잘 못할 수 있다.
선생님의 시선을 보고는 선생님이 저쪽을 보면 이쪽 학생이 컨닝을 하고 선생님이 이쪽을 보면
저쪽에서 컨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지능적인 시험 감독은 뒤에 가서 서 있다. 선생님이 어딜 쳐다보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전체에 감독관의 시선이 고루 퍼져 있게 된다. 실제로는 시선이 한 곳에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힘이 골고루 미친다.
그러나 이렇게 뒤에서 양떼를 모는 관리형 지도자에게도 한계가 있다. 양에게 맡기고 뒤에서 양떼의
치다꺼리를 하는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말해서 리더가 아니라 매니저(관리자)라고 해야 옳다.
어떤 형의 리더십이 되기를 원하는가? 앞에서? 뒤에서?
그런데 오늘의 시대에는 앞장서는 독선적인 지도자도, 뒤에 서는 관리형 지도자도 양떼들을 몰기
힘들다. 양떼들은 침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진정한 양치기 리더는 앞에도 뒤에도 아니고 양떼들의 한 복판에 있어야 한다. 즉 양 무리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뒤에도 앞에도 아닌 무리 한가운데서 말이다. 이것이 현대의 지도자이다.
벨기에의 유명 작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가 그린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이라는
그림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그림 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있다.
군중 속에 묻혀있는 예수,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예수, 그러나 도마에게처럼 손을
내밀면 그가 예수라는 증거인 창 자국을 만질 수 있는 예수, 진정한 지도자 예수님, 모습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지만 항상 바로 내 곁에, 우리 곁에 계신 분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섬김의 지도자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진정한 그리고 업그레이드 된 지도자는 섬기는 것도 모르게 섬기는 자여야 할 것이다.
자신을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고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양떼를 이끌고 모세처럼 사막을 건너
가나안의 땅에 이르는 지도자의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요청되는 리더십의 특성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예수님은 때로는 우리들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그리고 우리 한가운데 묻혀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목사들이 때로는 양떼의 앞에서 때로는 양떼의 뒤에서 그리고 한가운데서 그리고
희생양의 마음과 자세로 양떼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오늘(2012. 3. 20) 뉴스에서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자 발표를 보고 들었다. 관심을
가졌던 바근혜 위원장이 11번이다. 1번이 될 거라는 관측도 나왔었지만 11번으로 발표되었다.
나를 따르라는 앞장서는 분이 아니고 또는 뒤에서 몰고 가는 백업형, 관리형도 아니고 국민 한 가운데서
모두 함께 가는, 양떼들의 한 복판에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 걸어가는 지도자로 보인다.
(이어령 저 '지성에서 영성으로'(pp103)를 읽고 편집한 글)-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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