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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계시판

국민명령 3호ㅡ학교에 태극기가 사라지고 있다

(제공 : 김영대 님)

국민명령 3호- 학교에 태극기가

사라지고 있다



(부족한 글이지만, 여러분의 고운 손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 우리 국민들을 일깨워

주소서)

전공노, 민공노, 전교조, 한총련 할 것 없이, 대한민국에

기생(寄生)하는 모든 좌익들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충성할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며,

태극기나 애국가는 분단의 상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모임에 태극기를 세우지 않으며,

애국가 대신 과거 붉은 운동권들이 제창하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일제시대 광활한 만주 평야를 말 달리던 광복군의

머리띠에는 반드시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고, 그렇게

싸우다 전사한 애국지사(愛國志士)의 시신(屍身)을

덮은 천도 피 묻은 태극기였다.

먼 이국(異國)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포(同胞)의 눈시울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은 조국을

사랑하는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건설 현장에서, 조국의 영광을

빛내며 게양대에서 올라가는 태극기를 보며 가슴에

손을 올리는 어린 선수와 근로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뜨거운 조국애를 느낀다.

그러나 좌익들에게 있어 태극기는 불필요한 깃발이며,

적화(赤化)통일을 방해하는 방해물이었을 뿐이다.

지금 학교 교실에는 태극기가 내려지고 있다고 한다.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태극기를 보며 조국애를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학교에서 대한민국을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전교조 출신의 교장들이 학교를 지배하는 곳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라 안팎으로, 세계만방(萬邦), 온 나라 방방곡곡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어야 할, 내 나라 국기가 사라지고

있다. 통탄(痛嘆)에 통탄(痛嘆)을 더한다.


전교조. 이 무도한 이적(利敵) 집단.
이명박 대통령이시여, 제발 이들을 척결토록 허락해

주소서.
우리가 싸울 것입니다.



- 정재학 -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사무총장,시인정신작가회 회장,

ptimes논설위원, 전남 자유교조 위원장, 자유지성 300인회 회원)


♬ 나의 조국 대한민국 ♬
2009/10/26 [12:22] ⓒ redout

Subject ; 왜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민중의례를 고집하는가

Home > 오피니언 > 칼럼2009-11-05 오후 2:03:37

왜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민중의례를 고집하는가

written by. 박효종

국기,애국가,순국선열ㆍ호국 영령에 대한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민중의례'를 거행한 공무원 노조는 국가와 국민의 공복이기를 거부한 것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에 살면서도 그 ‘국민됨’을 마음속 깊이 의식하거나 의미를 헤아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것은 마치 산소를 호흡하고 살면서도 그 산소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그럼에도 산소 호흡기가 때때로 산소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임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예식이 있다면 국민의례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순국선열ㆍ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이뤄져 있는 그 짧은 예식에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이미 오래전에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순국ㆍ호국 영령들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미 고대 로마인들이 조국과 관련, 선조에서 어원을 갖는 ‘파트리아(patria)’로 부른 것도 이와 상통한다. 이 ‘국가적 기억’을 통해 우리는 정당이나 종교, 고향은 달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배에 같이 타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만일 국민의례가 없다면, 모든 면에서 같은 것이 별로 없는 십인십색의 존재가 ‘하나’라는 의식을 갖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는 하나”라고 하나 앤더슨(B. Anderson)의 말처럼 ‘상상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국민의례는 생일을 맞는 친구에게 불러주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와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친소관계에 차이가 있어도 생일을 맞는 친구에게 “생일 축하합니다”의 노래를 부름으로 하나됨을 확인하는 것이니, 생일에 다른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모두에게 친숙해야 할 국기, 애국가, 순국선열ㆍ호국 영령에 대한 맹세가 도전을 받고 있어 유감이다. 엄숙한 공식행사 때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대신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 대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을 한다. 특히 최근 공무원 노조 모임에서도 민중의례가 진행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애국가 제창도 없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각 개인들이 사적 영역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선호하는 노래를 부를 수는 있다. 학교마다 교가가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기와 애국가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있다면 곤란하다. 애국가는 운동경기 때나 부르고 엄숙한 공식 모임에서 기피하는 대상이 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국기와 애국가야말로 정체성의 상징이며, 나라 사랑과 민족 사랑의 상징이다. 우리는 물론 공무원 노조가 공식 석상에서 거행한 민중의례가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하는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법의 이름으로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국가 공복으로서의 도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국민의례를 피하고, 민중의례를 고집하는가. 혹시 대한민국으로부터 비롯되는 번영의 열매는 따 먹으면서도 그 뿌리는 다른 데서 찾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에 싫증(?)이 난 것인지 저으기 궁금하다.

(konas)

박효종(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kookbang.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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