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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 대한민국 國璽와 그 만들어진 배경◈

◈ 대한민국 國璽와 그 만들어진 배경◈

이 국새는 1999년 2월에 18금 2.15㎏을 녹여 만들었으며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이라 글자를 새겼다.
손잡이는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조형화했는데 제작비용은 1억5000 만원이 들었다고한다.
추진배경
국새는 예로부터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사회적 배경·요구·사상에 바탕을 두고 제작되었다. 따라서 국새는 그 나라의 시대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국새는 1962년 말에 제작되어 37년간 중요 외교문서, 훈·포장증, 임명장 등에 매년 16,000여회 이상 사용되어 인면(印面)이 손상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문(印文)의 서체는 한자 전서체(篆書體)를 모방하여 한글의 독창성을 상실하였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 왔으며, 국새 손잡이(印紐)의 거북이 형태 조각은 과거 중국의 천자가 열후(例候)들에게 하사하던 국새의 형태로서, 역사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의 잔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국새의 재질은 옥(玉) 또는 금(金)으로 제작되던 과거의 전통을 무시하고 은(銀)으로 제작하여 국새의 품격을 낮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게다가 그 제작경위 또한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 등 그 동안 국새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래서 정부는 199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국가의 보물이자 예술품으로 후손에게 길이 남겨줄 수 있는 민족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켜, 대망의 2000년에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담아 새 국새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새 국새 제작진


전각 : 여원구(한국전각학회 회장)
조각 : 김영원(홍익대 조소과 교수)
매듭 : 김희진(중요 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보유자)
국새함 : 홍동화(전승옻칠 명장)
주물제작 : 최 주(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위원, 공학박사)
[자문위원]
정양모(국립중앙박물관장, 위원장) 김리나(홍익대교수)
김응현(한국전각학회 명예회장) 안병희(서울대 명예교수)
이성미(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전상운(문화재 위원)
진태하(한국전각학회 고문) 최의순(서울대교수)
최 주(KIST연구위원) 한영우(서울대 인문대학장)
한용택(한국인장업연합회장) 김재철(행정자치부 의정국장)

새 국새 인영(印影)



[규격]가로 10.1㎝, 세로 10.1㎝ (세종대왕 어보를 기준으로 제작)

서체의 특징


훈민정음 판본체의 서체에 충실하며 세종대왕께서 한글창제 당시 기본으로 삼으신 천(天)·지(地)·인(人) 3재(3才)를 모두 표현하였다. 서체는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단순하고 명쾌하며 정중함과 부드러움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인영에 담긴 뜻


변(邊)은 두텁게 하여 외세(外勢)로부터 국토보위(國土保衛)를 굳건하게 함을 상징하였고, 여백은 시원스럽게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정신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다짐하는 뜻을담아 표현하였으며, 정사각형의 인면은 바른 정치와 공직사회의 굳건한 기강을 의미토록 하였다.
[새긴 사람 ] :전각가 여원구(呂元九, 1932년 3월 7일생) 한국전각학회 회장(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대상 수상 ( 83년 )
대한민국서예대전 운영위원장 ( 91년 )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 93년 )

인뉴(印紐, 손잡이)



국새의 형상


봉황이 무궁화 꽃잎을 함께 물고 구만리 창공을 웅비(雄飛)하는 모습으로, 조형미를 극대화시키고 남성적·적극적·개척자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봉황의 형상을 현대적 감각 으로 디자인하였다.
조각에 담긴 의미

하늘의 이상을 실현하는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인 봉황이 무궁화 꽃잎을 함께 물고 있는 것은, 21세기에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국가 지도자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화합·협력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구만리 창공을 웅비(雄飛)하는 봉황의 모습은 국가와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영광을 기원하며, 국운(國運)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각가] : 김영원(金永元, 1947년 5월 18일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88년, 96년)
제22회 상파울로 국제비엔날레 한국대표 참여(94년)
개인전·초대전·단체전 출품 120여회


<부품 설명>


-인(印)끈
흰 명주실을 다홍색으로 염색하여 꼬은 12사(絲)로 광다회(廣多繪)를 치고 중심에 안경 매듭을 맺은 후 방망이 술을 부착하였다.
※ 끈을 만드는 방법에는 둥근 형태로 끈을 짜는 원다회(圓多繪)법과 납작한 형태로 끈을 짜는 광다회(廣多繪)법으로 나눠어 진다.
- 보자기
조선왕조 왕의 곤룡포를 만들던 비단을 재현·제직한 다홍색 운문단(雲紋緞)에 명주 솜을 얇게 넣은 후 손으로 누빈 띠를 붙이고, 네 귀에 금박(金箔 : 순금을 종이처럼 늘인 조각)을 입힌 금전지(金箋紙)에 술을 달았다.
- 자물쇠 주머니와 열쇠술
자물쇠 주머니는 다홍색 운문단으로 귀주머니를 짓고, 남색 명주실 8사로 원다회(圓多繪:둥근형태)를 쳐서 도래(구슬형태)·국화·잠자리 매듭을 맺어 장식했으며, 열쇠술은 다홍색 명주 8사(絲)로 도래(구슬모양)매듭·정(井)자 매듭을 맺은 후 작은 딸기술을 부착하였다.
- 보자기 함
고문서(古文書) 보관용 중성합지(中性合紙)로 함(函)을 제작하고, 순금으로 실을 뽑아 명주와 혼합직조한 금란(金欄)으로 함의 외피를 장식하였다.(협조 : 호암미술관보존과학실 송정주) [ 제작자 ]: 김희진(金喜鎭, 1934년 5월 3일생)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전통매듭) 기능보유자

국새함



-재질 및 규격
느티나무를 전통 짜 맞추기 방법에 의해 제작 후 옻칠을 10회하고 주석으로 조선왕조 국새함의 장석문양을 재현하여 부착하였다.
규 격 : 20.3×20.3×21.4cm(장식포함 25cm)
[작가] : 홍동화 (洪東和, 1945년 8월 18일생)
전승 옻칠명장
※ 협조 : 이규삼(목수), 정희수(장석)
            [출처 : 두산세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