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조차 못 버리는 미련
잡동사니조차 못 버리는 미련
만개한 벚꽃이 꽃비 되어 내리더니 어느새 연초록 잎새가 바람에 찰랑댄다. 시커먼
고목이 며칠 밤새 꽃망울을 터트리고, 산야가 푸른 기운을 내뿜는 참으로 아름다운 계
절이다. 짧은 순간으로 이어질 나날이지만 신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감미롭
고 흥겨워진다. 새로운 의욕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이사 차
량들이 자주 눈에 띄고 여기저기 건축공사 현장도 늘고 있다.
얼마 전 나도 아담한 단독주택에서 30평 남짓한 근린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간 찌든 손때와 끈끈한 마음때 묻은 짐들을 가족들은 이번 기회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버리라고 했다. 작가생활 40여년 동안 동료·선후배 작가들이 보내오거나 푼돈
생길 때마다 사모은 시집, 수필집, 소설집 등 1만여권과 시집올 때 해온 혼수 솜이불,
신혼 무렵에 입던 옷가지…. 어쩌자고 아직도 품고 있느냐고 며느리들이 성화였다.
사진발 잘 받는다고 마구 찍었던 것일까. 사진은 어찌 그리도 많고, 신발은 하얀 코
고무신에서 시어머니 털신까지 십수 켤레나 됐다.
그동안 이사 다닐 때마다 조금씩 정리한 것 같았는데 실제 버린 것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전번보다 공간이 많이 좁아진 탓에 이사 온 집 어디에 구겨넣어야 할지 정
말 난감했다. 문제는 책이었다. 시골 오지나 도서관에서조차 기증받기를 꺼려 저자
서명만 지우고 헌책방과 재활용센터에 보내버렸다는 동료도 있었지만, 과연 그렇게
팽개칠 수가 있을까 고개가 저어졌다. 작가들의 영혼이 스며있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
들을 소홀히 다룰 수도 없는 일이고…. 내가 쓴 책들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
각에 그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터넷으로 온 세상 정보를 얻고 글을 읽을 수 있다 해
도 지면의 행간에서 느끼는 감동과 상상력마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시골 움막집으로 책을 옮긴 뒤 농기구 창고를 서재로 개조해 간이도서관으로 꾸며야
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지극정성으로 돌봐오던 앞뜰의 나무들은 또 어쩌랴. 내
가 손수 심어 그렇게 관리해온 유실수가 감나무 등 열다섯 그루나 된다. 집을 산 사람
은 그곳에 다세대 주택을 지을 거라며 큰돈 되지 않는 유실수들을 없애버릴 심산이었
다. 낭패감에 가슴이 조여졌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시멘트로 무장된 마당이 주차장으
로 활용되고 있어 나무 한 그루도 꽂을 수 없었다.
동네의 조경사를 불러 유실수들을 받을 수 있느냐고 타진해 보았다. 가져가고 싶진
않지만 내가 워낙 나무를 아끼는 것 같아 봐준다는 식의 생색을 내며 한 그루 값도
아닌 값을 부르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식 같은 나무들을 저런 얌체 장사꾼에게 넘긴
담! 경제적 물리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천리 밖 시골까지 나무를 옮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모진 마음을 먹으면 40년 지기 소장품들을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실제 정리할
나이에 있으면서도 모두 끌어안고 다시 옮겨 앉은 자신에게 혐오감과 짜증도 없지
않았다. 스스로 틀 속에 갇혀 역동적인 변화를 조심스러워하며 지난 삶을 부둥켜 안
고 있는 몰골이 답답하고 답답했다. 말로는 ‘비워야 한다, 비워야 한다. 비워서 사방
이 소통되어야 새로운 기(氣)가 내 몸과 집안에 충천한다’ 뇌까리면서도 털어내지
못하는 속물적인 근성에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거실 안방 서재 할 것 없이 산더미처럼 부려놓은 이삿짐들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나를 향해 술에 전 남편이 이죽거린다.
“나도 나무도 책들도 버리지 말아요. 짐들이 없어지면 작은 몸뚱이가 하늘로 부웅
떠올라 땅으로 영원히 내려오지 못한다고. 이 짐들이 당신을 지상에 묶어놓는 끈들
이라는 거, 삶이라는 거, 인생이라는 거. 가만, 내가 뭐라고 지절대지. 꽃피고 새 우
는 이 좋은 봄날에….”(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