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여론조사 전문가 李東昱씨(전 월간조선 기자, 한국 갤럽 간부)를
만났더니 '낙동강 벨트가 赤化되는 걸 막은 사람은 조영환씨(부산강서을, 자유선진당 후보)다'고 평가하였다.
논리와 거친 말솜씨를 겸한, 우파의 대표적인 거리 투사 조영환씨가 비록 3등을 했지만 문성근 후보 공격에 주력, 새누리당 김도읍씨의 당선과 文씨의 낙선에 결정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후보자 TV 토론을 봤다는 李씨는 '문성근씨는 조영환씨의 맹공에 압도당하여 기가 꺾이더라'고 했다.
조영환씨는 이 토론에서 文 후보의 이른바 '백만민란'이 지닌 종북적 반역성을 파고들어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토론회가 현지에서 입소문으로 번진 것이 한때 앞서나가던 문성근씨가 득표율 45%로 패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李씨는 여러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 당선자를 낸 전문가인데, '이념적 확신을 깔고서, 자신의 당선을 포기하고서라도, 主敵의 당선을 저지하는 데 올인한 조영환씨의 경우는 한국 선거사상 처음일 것이다. 보수대연합의 한 모델이 되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파 인터넷 신문 올인코리아 편집인 출신 조영환씨는 지난 1월18일 참깨방송 인터뷰를 통하여 '문성근 잡기 위해 부산 간다'고 선언하였다.
경북 울진이 고향이고 강릉에서 살고 있는 그는 무소속 출마를 결심, 일찍 부산 강서乙로 내려가 선거 사무소를 열었으나 무소속으로는 선거운동에 한계가 많다는 걸 절감,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았다.
종북좌파 세력과 거리에서 결투해온 조영환씨는 동지적 결속력이 강한 10여 명을 데리고 내려가 오직 문성근 공격에 집중하였다.
배우 출신 문성근은 화려한 멘토단을 자랑하였으나, 文씨를 공동체의 敵으로 보는, 신념에 찬 조영환 부대를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만민란 선동꾼은 국회 아닌 감옥으로'라는 조영환 후보의 구호가 섬뜩하였을 것이다. 조영환씨는 선거기간중 매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상황을 전해주었다. 그의 고민은 '내가 너무 잘 나가면 우파분열로 문성근이 당선된다'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에게 문성근의 정체, 특히 백만민란의 반역성을 폭로하는 데 선거운동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조영환씨의 대중연설은 애국심과 정의감에서 우러나는 '고급 욕설'이 많지만 내용이 좋다.
미국 하버드, 예일, 버클리 등 유수한 대학에서 제대로 정치, 사회 분야를 공부한 바탕에다가 지난 10년간 치열하게 종북세력과 싸운 체험이 있다. 그의 屋外연설은 듣는 이들에게 통쾌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
이런 실력이 문성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새누리당 김도읍 후보는 검사출신인데, 종북세력과 싸워본 경험이 없으니 조영환씨의 역할은 절묘한 보완이었다. 조영환씨는 선거기간중 김도읍측과는 일체 접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문성근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집중하였다.
'문성근을 잡는다'는 목표와 大義에 충실하니 자연스럽게 보수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조영환씨의 활약상으로 문성근씨의 이념적 정체성이 드러나면서 앞서 나가던 그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보통 생활인들은 이념문제에 관심이 적다. 누군가는 쉬운 말로 설명해주어야 각성된다. 조영환씨가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문성근씨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노무현 진영의 스타(진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는, 제대로 이념공세를 당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을 것인데, 너무나 버거운 상대를 만난 것이다. 李東昱씨는 '텔레비전 토론회 때 조영환씨에게 당하는 문성근씨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게임이 거기서 끝났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조영환 캠프 사람들은, 야간에 활동하는 문성근 지지자들까지 좇아다니면서 철저하게 기를 꺾는 싸움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지난 4월11일 오후 투표를 끝낸 조영환씨는 나에게 전화로 '김도읍 후보가 크게 이길 것이다'고 자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당선처럼 기뻐하였다.
'11일 밤 바로 곁에 있는 김도읍 당선자의 사무실에 가서 당선을 축하를 해줬습니다. 많은 김도읍씨 운동원들이 KBS, YTN 등 방송 카메라들이 있는 가운데 '조영환'을 연호하더군요.'
이틀 뒤 조영환씨는 조용히 현장에서 철수, 자신의 거주지인 강릉으로 돌아갔다.
조영환씨의 殺身成仁이 없었더라면 문성근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론은 문재인-문성근이 낙동강 전선을 확보하였다고 추켜주어 親盧세력의 得勢를 도왔을 것이며 4.11 총선을 자신들의 승리라고 해석하였을 것이다.
조영환씨는 전략적 선거구에서 결정적 역할로 낙동강 戰線을 지켜낸 셈이다. 인간이 私心을 버리고 애국심과 正義感을 따르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기분좋게 증명하였다. 그에게 전화로 '선거비용은 어떻게 되었나'라고 물었더니 '선진당이 고맙게도 등록비용을 대주었고, 결산하니 3000만 원 정도 빚을 졌다. 집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유쾌하게 말하였다. 자기 돈 써 가면서 애국하고 빚을 지고도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게 애국세력의 저력이다.
전략과 이념과 大義에 충실하면 저절로 大同團結, 白衣從軍, 分進合擊이 이뤄진다는 것을 실증한 희귀한 사례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YOUTUBE.COM'에서 분투중인 참깨방송(김종환 대표)이 선거기간중 조영환씨의 활동상을 충실하게 보도한 점이다.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언론의 큰 역할이었다. 조영환씨의 표현대로 참깨방송은 '낙동강戰線의 종군기자'였다. ,,,,,,,,,,,,,,,,,,,,,,,,,,,,,,,,,,,,,,,,,,,,,,,,,,,,,,,,,,,,,,,,,,,,,,,,,
| 내 평생에 이렇게 머리를 많이 짜내고 힘을 모은 싸움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
2개월 동안 낙동강 전선을 지키면서 여러 분들의 성원과 후원으로 백만民亂세력은 진압되고,
좌익혁명을 부추기는 골수 종북좌익분자 문성근 내 구역 낙동강전선은 잘 지켜졌습니다. 조영환이 달려든 북강서乙은 지켜졌는데, 이웃 사상구 손수조는 공천이 잘못되어서 무너졌습니다. 11일 밤 바로 곁에 있는 김도읍 당선자의 사무실에 가서 당선을 깊이 축하를 해줬습니다. 많은 김도읍씨 운동원들이 KBS, YTN 등 방송 카메라들이 있는 가운데 '조영환'을 연호했습니다. 나는 '김도읍은 스타다'라고 축하했습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 선거기간 내내 일체 접촉하지 않은 김도읍 후보를 축하해줬습니다. 김도읍 당선자는 꼼수를 모르는 검사 출신의 官運이 매우 좋은 착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머리를 많이 짜내고 힘을 모은 싸움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온갖 변수들을 고려한 두 달 간의 전쟁은 사무실에 전기장판을 깔고 침낭에서 자면서 이뤄졌습니다. 정식 방에서 거의 두 달이나 자지 못한 야전생활이었죠. 서울에서 내려운 아스팔트 동지들이 1당 100으로 상대 운동원들과 싸워줬습니다. 김명기, 신길승, 권신웅, 배성관, 류인근 등 아스팔트 우파들은 좌익과의 싸움에는 범들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서 낙동강전선 死守의 중요성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좌익선동세력의 제압에 지혜와 역량을 모았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한 아스팔트 애국동지들은 역시 탁월한 판단력, 행동력, 전투력을 가지고 나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라 줬습니다. 하늘의 군대도 아마 저의 동지들보다 더 잘 싸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백만民亂세력은 우리의 출현 때문에 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서, 낙동강 허물기 전투에 큰 차질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선거 중에 정재학이 부산선관위에 나의 학력이 허위가 아니냐는 이의제기를 해서, 하버드와 예일의 라틴어 졸업장을 다시 번역하고 하버드와 예일에서 온 편지봉투까지 24만원을 들여서 공증받아 부산선관위에 내기도 했습니다. 스토커 때문에 이중으로 지불한 돈이 무척 아까워서 선관위에 짜증을 내기도 했죠.
내가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데에 매우 유익하다는 판단이 현지에서 내려졌는데, 개뿔도 모르는 자칭 우파활동가들이 나보고 사퇴하라고 닦달하는 것을 보고, 몽상한 애국팔이들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스팔트 동지들은 오늘 기쁨에 잠을 자지 못하고 무용담을 즐기다가 밤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차차 망국귀신과 싸우면서 낙동강전선 지킨 싸움을 자세히 적고 싶습니다. 후원금을 내어주신 여러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
문성근 잡기 위해 부산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