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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下流 人生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이유 ▲

★ 下流 人生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이유 ▲







▲ 송희영 논설실장


얼마 전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그냥 쉰다'는 백수가 160만
명이다. 진짜 실업자와 취업 준비생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백수는
300만이 넘는다고 한다. 부실 집단의 크기가 밥벌이해 보겠다고
뛰어다니는 경제활동 인구 중 최소한 10%를 훨씬 넘는다는 뜻이다.


금융 기관과 정상 거래를 할 수 없는 신용 불량자를 포함, 금융
소외 세력도 700만 명이 넘는다. 거래는 트고 있으나 언제 뚝
끊길지 아슬아슬한 사람까지 합치면 1000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
하는 전문가도 있다. 경제활동 인구 중 2할을 훌쩍 넘어 3할을
차지하는 숫자다.


취업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 전세와 월세로 사는 가구, 생활보호
대상 가구 등 빈곤 통계를 종합해보면 2008년 현재 한국 사회의
최소 10% 이상, 최고 30%까지는 허약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과장된 숫자가 아니다.


글로벌 시대의 빈곤층은 우리들 바로 옆자리나 뒷자리에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에는 달동네, 판자촌,
쪽방 마을이라는 다른공간에 빈곤 집단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연봉 3억원짜리와 같은 빌딩에 월 80만원을 받는 전화 상담원이
공존하는 식이다. 다만 부실 집단이 한 사무실에 섞여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햄버거 체인점에서 포테이토칩을 건네는 시간제 '알바' 아가씨
나, 백화점에서 무거운 박스를 운반하는 계약직 사원도 언제나
웃는 표정과 말쑥한 복장으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시간당 3800원 남짓으로 한 가족 부양은커녕, 제 한 몸을 지키
기조차 버거운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에 불과하다.


신(新)빈곤층의 또 다른 특징은 허우대가 멀쩡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장(家長)이 저학력이거나, 이혼-사별(死別)가정,
또는 홀로 사는 노인층에서 가난의 고통이 만연했던 반면, 2000
년대 들어서는 20대와 30대의 젊은 빈곤층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부모 슬하를 떠나지
못하거나 결혼 후에도 생활비를 보조받는 '캥거루 계층'이 자리
잡았다. 신용 불량자의 대다수도 팔팔한 연령층이다.


현대판 빈곤 문제가 어느 나라에서나 골치 아픈 이유는 혼자
힘으로는 좀체 바닥 인생에서 탈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제 시장의 경쟁에 밀려 회사가
도산하면 어느 날 낙오자로 전락해버린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돌연 비극이 시작되는 셈이다. 낙오자들은
금방 고금리 사채(私債) 더미에 빠지거나 신용불량 상태에
진입해버린다.


게다가 인터넷이 발달된 이 세상은 일단 어느 한 곳의 카드
거래가 정지되면 거의 모든 대출이 불가능해지는 올가미를 드리
우고 있다. 한번 말썽꾸러기로 찍히면 평생 빈곤층 전용 버스의
고정 좌석에 앉아있으라는 말이나 다를 게 없다.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온 세계 최고의 기능인들이 하루
벌어먹기가 힘들다고 신문 지면과 TV 화면에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라. 그들은 무능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단지
제조업이 무너지는 이 시대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만약 베트남이나 인도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만한 인재들이다. 세계화의 거친
황사(黃砂) 세례를 받은 나머지 많은 하층민들은 빈곤을 이겨내
는 저항력조차 잃고 있는지 모른다.


일부에서는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수백 년 묵은
구휼(救恤)철학으로 빈곤층 문제를 외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11년 전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도, 회사도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마당에 이제 와 스스로의 땀과 눈물로 빈곤에서 벗어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주문이다.


새 정권과 새 국회는 글로벌 시대에 새로 떠오른 하류 계층에
주목,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빈곤층의 서바이벌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들 이마에 붙여진 신용불량이라는 '레드 카드'를
제거해주면 몇 년 뒤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 도덕적 해이(解弛)
가 만연할 것이라고 걱정하겠지만, 그렇다고 30% 안팎의 부실집
단을 그대로 안고 선진국으로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송희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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