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의원. 저는 탈북자의 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탈북자들을 향해 던진 욕설을 듣고 저도 처음엔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제가 보기엔 당신은 참 비운의 여인입니다. 세운 ‘공’에 비해 이처럼 바가지로 욕먹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3년 전 저는 ‘임수경이 북한에 뿌렸던 금단의 열매들’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당신을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해방에 큰 기여를 한 공로자’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북한 주민들은 ‘탈남(脫南)’한 당신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1980년대 말 북한 사람들이 아는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리는 미제의 식민지’였습니다. 사람 못 살 그러한 곳에서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날아온 당신의 모든 행동과 발언은 너무나 거리낌 없었고 독재 사회에서 기죽여 살아온 흔적이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남한 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겠다는 당신의 요구를 수용해준 것은 상상 못할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분단선을 넘는 날 북한 주민들은 슬퍼했습니다. 저 정도의 ‘대역죄인’이라면 8촌까지 멸족될 것이라는 것이 북한 주민들이 유일하게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남 담당 기자들도 서울을 방문했다가 당신의 집을 불시에 찾아갔습니다. 임수경의 가족이 무탈하게 살고 있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그들조차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피해는커녕 북한 중앙당 간부들보다 더 풍요롭게 잘사는 당신 가족의 모습을 북한방송을 통해 지켜보면서 북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 감옥에서 조카에게 썼다는 편지, 그리고 3년 만에 석방됐다는 소식을 노동신문을 통해 접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남조선이 당국의 선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감옥에서 석방된 지 2년 뒤부터 북한은 수많은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십만 명이 탈북했습니다.
사실 탈북자들을 변절자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변절하는 데 아주 지대한 공을 끼친 일등 공신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평양에 왔을 때 10대였던 저는 당신을 보면서 당국의 선전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게 됐고 결국 훗날 탈북해 한국에까지 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당신을 보면서 남조선이 괴뢰파쇼독재가 아님을 알았는데, 당신은 지금도 한국이 독재국가라 주장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 탈북까지 했는데, 당신은 탈북자들에게 변절자라고 합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 반대로 당신에게 우리 탈북자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개성공단 방문 신청서를 냈지요. 꼭 북한에 가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통일의 꽃’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북한 대남부서는 지금까지도 남쪽을 ‘반통일 파쇼독재’라고 끊임없이 비난하고 있습니다.
파쇼독재하에서 누구보다 탄압을 받아야 할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고, 반통일 정권이 당신이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북에 보내주는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의 백만 마디 비난이 무색하게 될 것입니다. 가서 직접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실태를 몸으로 생생히 보여주길 바랍니다.
당신이 지금 대중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역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사명과 다른,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반대쪽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수 받아야 할 사람들을 미워하고, 함께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추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당신이 자기가 설자리를 깨닫는다면 당신을 포위하고 있는 한 줌의 북한 추종 세력에게서 풀려나는 대신에 남북 수천만 대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랬듯이 북한이 탈북자들도 원할 경우 판문점을 통해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재판도 받고 감옥에서 편지도 쓰는 곳으로, 더 나아가 전근대적 연좌제가 철폐된 곳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탈북자들에게 입힌 상처는 미안하다는 말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 걸고 탈북한 용기를 격려하고, 독재와 세습 아래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에게 함께 분노한다면 그때는 탈북자들이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